어릴 때 엄마와 이런 대화를 했다. 결혼을 해야하냐 말아야하냐에 대한 주제였다. 나는 안한다고 했다. 그때는 의례 어른이 되어 하는 행동들이 소름끼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때였지. 엄마도 듣다가 그럼 결혼 못하지 그러고 말았다. 아니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와 결혼하면 가능할 일일 수도 있다고 조언을 해주더라구.
아무튼 그렇게 나는 노처녀로 늙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연인 것 같은데도 우연이 아닌 듯한 그런 만남들 속에서 왠지 "노처녀를 처분하기 좋은" 조건의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홀아비였지. 애가 있고 이혼하거나 사별한지 꽤 된 사람들이었다. 다들 아이들을 사랑해서 그런지 성격도 좋고, 특히 딸인 경우는 대화도 잘 통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자기 관리를 너무 안해서 그런지 매력도 없구, 시골 할아버지 같이 생긴 것도 같고 해서 자세히 볼수록 매력을 느끼기가 힘든거야.
왠지 나도 그랬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되면은 몸에서 냄새도 나고, 피부도 거칠고 트러블도 많고, 기본중의 기본관리인 자외선차단제도 안발라서 얼굴과 몸이 까매지기 시작하고 패션도 별로고 그냥 정말 매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잖아? 그때 누군가를 만나봤자, 서로 민폐 아닌가 싶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말이다. 만약에 그 상태에서 만나봐. 그러면은 갑자기 여유가 생겨? 내 노동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그러면은 여유가 생기는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서 매력이 있다고 해서, 만나도 그 사람이 민폐를 넘 끼치고, 일도 안하고 대신 돈을 벌어다줘야하고 끊임없이 돌봐야하는 수준이라면은 그 사람이 매력적이어도 만나면 안되지.
그러니까 결국에는 만나야하는 사람은, 매력도 있고, 자기 관리도 스스로 잘하고, 자기 밥벌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한단거야.
그리고 홀아비들은 꼭 홀어머니가 계신다. 그 홀어머니란 분들은 곧 아프신데가 많으실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홀아비를 만나면 말은 잘 통하겠지만,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각오해야하는 거야. 게다가 육아까지 해야한다. 그래서 보면은 외국에서 돈주고 부인을 얻는 경우는 그런 사람들이 얻는 것 같더라구. (하녀 + 규칙적인 섹스상대로) 사회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남자들. 남한테 자랑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은 결혼을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한번은 편의점 임시 알바를 하러 갔는데, 그분은 자기가 딸이 네명이나 되는 홀아비였다. 나중에 딸이 뭘 사러 오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나한테 자기가 가진 명품을 자랑하는거야. 자기가 사귀는 사람은 명품을 받을 수 있다는 듯이 뭔가 깨알 홍보를 하는거야. 엄청 피곤한 가운데에 말이지. 근데 나는 명품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일단 사람이 보였고, 그의 네명의 딸이 부담스럽게 보였다.
노처녀가 되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렇게 뭔가 어떤 여자가 버린 찌꺼기 같은 존재를 만나야하는건가? 뒤치닥거리 할라고 말이야. 혼자 사는 사람은, 정말 혼자사는게 무지하게 편하다. 누군가를 돌볼 에너지가 0인 아주 이기적인 상태가 된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그 사람 혼자 살 때는 천사여도, 같이 살면은 빌런으로 변하는거야. 계모로 변신하기 딱 좋은 사람이 혼자 살던 사람이야.
작년에도 어디 가서 일할 때마다 왠지 모를 눈치가 보이는거야. 그 사람들하고 잘 안된 이유는 일하는데서 만났기 때문이지.
나이가 들면 혼자 살아야하는게 가장 리스크가 크고, 돌연사하면은 고독사로 넘어가잖아.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홀아비랑 사는건 아닌 것 같다.
모차르트가 굉장히 방탕하고 낭비하며 살다가 이십대에 죽었고,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오늘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그 시대 때는 수명이 그리 길지도 않았고, 의학도 발전하지 않아서 아프면 엄청 아프다가 죽는거야. 그래서 어쩌면은 살고 싶은데로 막 살다가 20대에 죽는게 가장 베스트인 걸 수도 있는거야. 천재는 천재이구나 싶었어. 내가 죽어도 아무도 장례식에 안오고, 아니 장례식도 안열리고 그냥 무연고자 처리되어버려도 내가 죽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 장례식 성대한게 뭔 소용이야. 화가가 죽어서 자기 작품이 수백억에 팔려도 그 사람한테 뭔 소용이야.
암튼 "사랑"이란 프레임을 씌워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까지 시키는 그런 관계는 정말 피해야다녀야지.
나도 편부모가정 출신이라서, 그때는 아빠가 재혼을 안했다. 아빠는 대신 그냥 밖에서 여자친구랑 살았던 것 같아.
내가 봐도 못할 짓이지. 사귀는 여자와 그리고 실패한 가정의 자식들을 굳이 같이 살게 하는거 말이지. 피도 안섞였는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어릴 때의 나는 정말 예의도 없구, 철도 없고 바보같았던 것 같아. 그런 상태에서 아빠가 누굴 데려왔었으면은, 아마 진짜 적응 안되서 누군가는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보면은 로맨스나 가족영화에서는 굉장히 잘 지내잖아. 갈등이 있다가도 해소가 되고, 그냥 힘들어도 참고 산다 그런 식으로 끝나는거야. 그래도 현실은 다른 것 같다.. 다들 피하는 사람은 피하는 이유가 있는거였다.
내가 편부모가정의 자녀였다고 해서, 이해심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안한다. 오히려 트라우마가 생각나서 괴로워할 것 같고 실제로도 그랬다.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하니까, 자라오면서 내내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회의감이 있는 상태였던거고 그래서 그냥 혼자인게 편했던거야. 나도 그냥 모짜르트처럼 머지 않은 것 같다.
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서 내 운명을 거슬러 개척할려고 했지만, 내가 아무리 과거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아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과거를 상기시키며 나를 끌어내리려고 했고, 그 힘도 꽤 만만치가 않았던 것 같다. 성공하는 방법중에 과거에 연연하지 말기가 있는데, 그렇게 살면은 주변에서 과거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그게 쉽지가 않은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