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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나를 만난다면?

by 복gili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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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을 넘겼고, 이제는 마흔하나인지 둘인지 잘 모르겠다. 만나이까지 개정되서 도무지 내 나이가 몇살인지 가늠이 안된다. 네이버의 나이계산기에 의하면 내가 만나이로 마흔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내가 마흔 두살인 것 같다. 누구랑 얘기했더라. 내가 마흔하나일 때 나보다 한살 어린 사람인가 하고 나이얘기를 하다가 내가 마흔이라고 하니까 정색하고 마흔하나지 그러는거야. 자기가 마흔이기 때문에 나는 마흔하나여야한다면서 말이지. 

 

아무튼 나는 만 마흔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내가 진짜로 40일 때 하지 않았던 일을 요즘에 했다. 바로 선물을 전해주는 거였다. 그때만해도 고양이한테 모든걸 다 갖다바치느라고 남한테 선물사주고 뭐하고 할게 없었다. 우리집에서 매일 나를 기다리는 어떤 고양이를 위해서만 내가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혼자라서 그런지 외부로 신경이 뻗치기 시작하면서, 은근히 고마운 사람들이 눈에 띄는거지. 게다가 내가 요즘 돈아끼느라 외식도 안하고, 비싼 커피도 막 안사마시고, 사람들한테 커피도 안사주고 하다보니까 이 귀한 돈을 쓸데가 있다면 어디다 써야하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된거야. 그래서 선물을 사줬고, 이것저것 소소한 선물까지 다 합치면 지금 한 열댓명한테 선물을 준 것 같다. 어제는 옆집 부부한테도 선물을 줬다. 원래 크기로 승부해야하는데 사이즈가 작았다. 

 

은근히 물론 가끔 아랫집에서 쿵쿵소리가 기분나쁠 정도로 들리긴 했는데 내가 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인거야. 조용하고, 말썽도 안부리고, 불도 안나고 말이야. 그게 정말 대단한거지. 3년연속 안전한 빌라를 만들어준 그 이웃들한테 다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아랫집 아저씨하고 얘기를 나눴다. 진짜 이상한 분이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러고보면 내가 서른살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난 진짜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말이야.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때는 살던 집도 별로였고, 가진 것도 없었는데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산책을 규칙적으로 다녔다. 요즘은? 요즘은 걷기보다 운전을 더 오래 하는 것 같다. 같은 시간동안 더 멀리 다니게 되고, 올해 나는 국내를 차로 돌아다녔다. 예전에는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또 이십대 중반인가, 그때 다 쓰러져가는 중고경차를 사서 신나게 몰고 다니며 아예 SNS에 사람을 모아서 콘서트까지 같이 태우고 가는 수준이었다. 다들 비싼 차를 살라고 하는데, 나는 차를 모는게 더 우선순위여서 굴러가기만 하면 됐었지. 

 

내가 진짜 다행인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굳이 신경쓰고 살잖아. 괜한 신경을 쓰면서 괴롭히면서 말야. 근데 나는 안그래서 다행이야. 그렇게 살았으면 엄청 피곤했을건데, 발전도 없고, 변화도 없는 삶을 살았을거 아니야. 남들을 위한 삶을 살았겠지?

 

근데 내가 조심했었어야하는거는 괜한 사람을 사귀는거였지. 나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친하게 대하고 그런건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나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한테 잘해주는건 진짜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봐줘야하는건 아니었다. 근데 나는 봐줬었고, 그게 쌓여서 나한테 엄청난 안좋은 결과를 불러일으켰지. 반대로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끔찍한 결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사람사귀는건 조심했어야했다. 가깝든 멀든간에. 

 

그리고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하는 것도 좋지 않았어. 어느정도 긴장감을 가지고 거리를 두면서 사는게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건데, 그렇지 못해서 갈등에 휩싸이고, 서운하기도 하다가 멀어졌지. 좋아해도, 좋아하는 부분이 있었고, 안좋아하는 부분이 있었던건데, 안좋아하는 부분도 가까이 하다보면 멀어지게 되는거야. 그걸 간과했다. 그 사람의 좋은 부분만을 계속 가까이 하려면, 어느정도는 간격이 있어야만 했다는걸 말이다. 

 

오늘은 김밥을 만들어먹었다. 두줄. 김밥에는 시금치가 꼭 들어있어야지 맛있지. 파는 김밥에는 시금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시금치나물도 만들고, 재료도 다 정리해가지고 두줄짜리 재료를 접시에 준비해놓고 김밥을 쌌지. 예전에는 요리할 때 질서가 없었고, 양조절을 전혀 못했는데, 요즘은 계량도 할 줄 알고, 소분도 할줄 알게 되었다. 오늘 싼 김밥은 드디어 김밥같이 생기기도 했다. 전에는 다 터져서 실패였거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도무지 언제까지 살아야하나 그 생각도 든다. 

요즘들어서는, 사람의 출신성분이라는게 참 중요하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게 전혀 없고 퀄리티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사회생활할 때도 은근히 차별을 받은 것도 같고, 백이 없는 서러움도 겪은 것 같다. 무시도 당한 것 같다. 내 직업도, 연줄이 하나도 없다보니까 발전할 여지도 뭣도 없어서 이 직업이 언제까지 유효한건지도 모르겠는거야. 

 

차별에 대한 기억과 설움은 잔잔하게 후폭풍처럼 계속 나를 괴롭히고, 그로 인해서 살고 싶다란 생각도 안들고 빨리 죽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도 든다. 만약 이런 생각을 서른살의 내가 했더라면, 좀더 내 인생이 빨리 끝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별다른 노력도 뭣도 안하고 그냥 어영부영살다 죽었겠지. 

 

내가 일하는 곳은 대부분 이상하게도 뭔가 갈등이 많고, 순조롭게 진행되는게 없고,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내가 좀더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면 일이 잘풀리는 편이었던 것 같고, 내 위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이 꼭 이상하게 처신을 하고 결정을 해서 너무 힘들게 일을 해내고 괜한 일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일이 아예 없거나 해서 붕떠있고 말이야. 그러면 내가 일을 잘한다는거잖아. 그럼 더 좋은데 가서 일하면 되잖아? 왠지 가기가 싫은거야. 어디 가야하는지는 알겠는데, 준비하기가 싫은거야. 거기 갈라면은 뭐해야하고 뭐 공부해야하고 뭐 외워야하고 그러는데 그게 하기가 싫어서 안가고, 거기도 역시 또다른 갈등이 있을거고, 거기 적응해야하고 그런게 너무 짜증이 나는거지. 이런 나는 참 문제가 많다는걸 느낀다. 그러면 내가 뭘 만들어서 세워가지고 하면 될텐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까탈스럽게 구는 것 같잖아. 

 

아무튼, 나는 서른살의 나한테 참 미안하다. 얼마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겠어. 근데 뭔가 나아진 것 같으면서도 나아진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거야. 그게 참 슬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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