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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주말근무와 연두색간판

by 복gili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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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힘이라는 것은 의사결정에 좀더 내 의견이 반영된다는 거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아. 힘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그런 힘이 없는 존재더라고 하더라도, 정치색을 갖추는 사람들은 결국은 살아남고 싶어서 그렇게 된거지. 

그러니까 그사람들하고 어울리려면, 무조건 져주거나, 아니면 나도 누구편인지 확실히 해야하는 거였지 뭐. 

근데 살면서 나보고 어떤 편에 가담해라거나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그냥 선거철에 누구 찍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나한테 계속 와가지고 어떤 편이 되어야한다고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 왜냐하면 내가 여자이고 사회적 배경도 좋지도 않고, 부모님도 가난하고, 집안도 별로고, 내가 예쁜 것도 아니고 지금 뭔가 파워를 갖춘 것도 아니니까 그런거지 뭐. 

 

얼마전에 법인 외제차는 연두색 번호판을 달아야한다구 했잖아. 근데 그러고 나서 뉴스가 나오는데 주말에 근무를 한다는거야. 

왜냐하면 주말에 연두색 번호판이 돌아다니면 지금 회사차로 놀러가나 하고 욕을 먹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왠지 연관성은 없을 것 같아보이지만 이 뉴스가 그리 길지 않은 텀을 두고 연이어 나온게 조금 희한했지 뭐. 

 

그 뉴스를 보면서 나는 역시 사람은 힘을 갖춰야하고, 힘을 갖춘 사람들의 집단에 속해야지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거구나. 집단의 힘으로 말이야. 그러고 깨달음을 얻었지. 

 

요즘에도 일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들리는 말들이 많아서 말이야. 그 말들이 대부분 그런거지. 누가 누구편이라더라. 그런 결말의 말들. 

 

예전에 다닌 프로젝트들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말말말에 내가 상처받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만두기 일쑤였어. 

하지만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결벽증 환자처럼 그런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한다는게 끔찍해서 그만둔 것 같아. 

내가 결벽증인게 잘못된거였다. 

 

아니, 이럴 수도 있었잖아. 내가 결벽증이 있으니까 그런 높은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사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우리 고모도 평생 화장실 청소부로 살아왔지만, 고모가 만드는 김치도 너무 맛있고 그 맛을 내는 김치 브랜드도 없는거야. 이젠 고모한테 놀러가지도 않으니까는 그 김치를 맛볼 수도 없어. 고모가 김치를 만들어서 판매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내가 혼자 후회를 하고 있는거야.그럼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더러운 사람들의 똥오줌을 닦아내고, 유독한 화학제품에 계속 몸이 상해서 유방암에 걸리지도 않았을거고, 심장 수술을 하지도 않았을거고, 시력이 그렇게 급속도로 안좋아지지도 않았을텐데 말이야. 

 

계속 내가 인간쓰레기려니 하고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억지로 웃어가면서, 개발자들을 혐오하며 매순간 감시하는 관리자들한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하루종일 일만 하면서 편두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거잖아. 점점 내가 사는 방향이 나를 관 속에 쓰레기같이 밀어넣는 식이라고 느껴지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끔찍한거야. 

 

유튜브에서는 항상 멋진 광경만 보여주는데, 나는 그런 광경을 가까이 해보지도 못하고, 좋은 사람도 주변에 없고, 그저 자신의 편을 늘려서 자기 편하게 일하는데 온힘을 쏟는 무능력한 사람들한테 휘둘리면서 사는거야. 이 일이 끝나면 평생 연락하지도 않을 사람들한테 휘둘리면서 말이야. 

 

그리고 또 그런 것도 있어. 내가 엄마한테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랑 대화하면 너무 힘든거야. 자기가 힘들게 사는게 당연한거고 그게 인생이라 생각하는거야.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거라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나한테도 자꾸 강요하는거야. 그렇게 힘들게 살기를 말이야. 그게 당연한거고 그걸 잘못했다고 하면 화를 내면서 현실을 부정하는거야. 근데 나도 어릴 때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현실에 순응하기를 강요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바보같아. 

 

몇년 전에는 내가 전과는 좀 다르게 행동하게 되었어. 그냥 조용히 일만 했지. 어울리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몇개월이 흘렀는데 참 다행인것 같아. 정말 말한마디 섞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이었거든. 예를 들면 개발을 못한대. 그래서 짤리는 건데, 그럼 그 몇개월동안 공부 안하고 계속 자긴 못해 그러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진 않았고 잘한 것 같아. 그리고 또다른 예를 들면, 결국 대화를 해보면 성희롱인 것 같은 말을 하는거야. 모텔에 가서 잔다는 둥, 그때 안마를 받으러 갈려고 했는데 말렸다는 둥 그런 얘기 말이야. 굳이 이성인 직원 앞에서 얘기하기 뭐한 말들있잖아. 막말로 자기가 봤을 때 못생긴 이성한테는 죽어도 여지를 안남기기 위해서 그런 말은 안할거잖아. 그런 식으로 밖에는 말을 못하는 싸구려 인간들하고도 말을 안섞고 일만 했거든. 너무 좋았어. 그때.. 그때 나는 시간이 나면 내가 좋아하는 외국인 개발자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서, 기운을 냈던 것 같아. 

 

https://www.youtube.com/watch?v=OhU4yaNih2M

 

이 개발자가 하는 사적인 얘기들, 가족에 관한 얘기 자기 어릴 때 안좋았던 경험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진짜 힘들었지만 이렇게 잘사는거 보면은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나중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성공이라는게 대단한 재력가가 되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자기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사람도 성공한거라고 할 수 있잖아. 점점 범죄나 가난한 환경에서 멀어지고, 자기가 사는 집도 점점 멋있어지고, 외로움도 사라지는 상태가 성공한 상태가 아닐까. 

 

 

요즘 내가 공부를 하는 것도 이게 당장 나한테 도움이 되리라 생각은 안한다. 그래도 어떤 질서정연한 체계 속에서 보호받는 기분이 들어. 

예전에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서 느꼈던 불안감과는 정반대거든. 보호받는 느낌을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뭔지 전혀 관심이 없어. 그냥 당장의 겉모습에만 관심이 있지. 내가 힘들게 살든지 말든지 당장 자기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면 화부터내고 멸시하고 그러더라구. 그런데 뭐 그 사람하고 내가 잘 지낼 필요가 있을까?

냉장고에 썩은 음식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을 꼭 먹어야해? 그냥 버리면 되는거지. 

 

그 음식한테 화내고 짜증낼 필요도 없는거였어.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내가 랜덤채팅앱을 이용해봤는데, 왜냐하면 예전에 어떤 여자애가 남자친구를 앱으로 사귀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결혼도 하고 말이야. 나보고 앱을 이용하는게 이상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만나는 경로가 요즘 거의 없다보니까 그렇게 했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본거지. 결론은? 거기 있는 사람들은 같이 잘려고 만나는 사람을 찾는거고, 그 상대방이 앱을 사용하는 상대방이, 그렇게 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걸로 인식을 하고 있어. 특히나 돈을 받고 자는 여자들도 있기 때문에 앱을 이용하는 여자들을 천박하고 못살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적장애인으로 생각하더라고. 그러니까 욕구는 풀고 싶은데 당장 자기가 만날 수 있는 여자가 없으니까 그 앱에서 찾아서 욕구를 푼다음에 그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거야. 내가 앱을 이용할 때 그 앱에 프로필중에 돈을 주고 여자하고 자고나서 (아마 한 십만원 정도 준다고 써있더라고) 그 여자가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프로필에 그 여자 사진하고 특징과 아이디를 적어놓고서 그 여자가 침냄새가 나고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사기를 쳤다는 듯이 써있는거야. 그래서 다른 남자들이 그 여자를 만나면 안된다는 듯이 써있더라고. 그러니까 랜덤채팅 앱을 이용한다는 것은, 난 인간쓰레기가 되어도 좋아요~헤헤 하고 쓰는거야. 인간쓰레기가 기꺼이 되기 위해서 그 앱을 쓰는거야. 그뿐인거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면 랜덤채팅앱을 이용하기를 추천해. 

 

아무튼 그것도 개발자가 만든거잖아. 그런 세상을 만든 것도 개발자의 힘인거지. 여자를 막 대하고 싶은 니즈를 가진 남자들과, 지적장애인이 되고 싶은 니즈를 가진 여자들이 모인 세상을 만든 창시자인거지.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는걸까?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 주로 일해온 것 같아. 나라는 사람이 자꾸 초라해지고 내가 가진 신체적인 단점들 있잖아. 

예를 들면 내가 키가 작은데 계속 그런 신체적인 약점을 조롱거리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는거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내가 일을 잘해. 그럼 그 사람들은 에이 씨발 그러면서 내가 못하는걸 어떻게든 찾아내서 그걸 조롱거리로 삼아서 내가 그 세계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자멸하길 바라는거야. 내가 일을 잘하면, 내가 못생긴거 왜소한걸로 문제를 삼아.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면, 그게 완전 큰 사회문제가 되는거야. 내가 막 살인을 저지른 효과가 있는거야. 화나서 소리도 못지르는거야. 그냥 참아야돼. 

 

그리고 내가 아무리 커피를 사주고 밥을 사줘도, 그거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고마운 줄을 전혀 몰라. 그건 아주 당연한거고 괜한 짓을 한게 된거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돈을 써봤자야. 그냥 평소에 그 사람한테는 아무말도 하면 안돼. 고마운줄도 모르고, 자기 속의 어떤 결핍이나 슬픔, 트라우마에 갖힌 사람들은 아무리 잘해줘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는거야.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쉬니까 평일에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어떤 사람한테 휘둘렸는지 찬찬히 돌아보게 되더라고. 

왜 나는 존중을 못받았었던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있지? 왜 그런 상황에 굳이 빠졌을까 하면서 생각을 해보면, 

결국에는 괜한 대화에 동참을 했거나 괜히 베풀었기 때문이야. 

 

유튜브를 보면은 물론 그 사람들이 실버버튼을 받기 위해서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고, 왠지 공감될만한 영상을 올리는거잖아. 

근데 그래도 그 얘기들이 다 대수의 법칙에 의해서 그 수많은 얘기들을 다 종합해보면 맞는 말이야. 다 맞는 조언들이야. 

어제인가 엊그제인가는, 어떤 사람이 왜 스토킹을 당하게되었는지에 대한 영화 리뷰였거든. 근데 그 사람이 남자였어. 스토킹 피해자가 말이야. 원래 남자들은 스토킹을 잘 안당하잖아. 내 편견은 그렇거든? 그냥 소리지르면서 위협하고, 싸우고 그러면 무서워서 여자들이 도망가지 않겠어? 그냥 그런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 영화에는 아무튼, 남자가 카페 직원인데, 여자 손님이 불쌍해보여서 잘해줬다가 스토킹을 당한다는 그런 얘기였어. 난 근데 그 인연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 바로 타인에게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그게 너무 소름이 돋는거야. 

 

그러니까 타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건 굉장히 멋지고 좋은 거잖아? 근데 그로인해서 자신을 옭죄는 상황까지 치닫는게 그게 세상인거야. 세상이 드러운게 바로 그거야. 나도 그래서 괜히 피곤한 상황에 놓인게 한두번이 아니었어.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 이유없이 그저 어떤 "연민"과 같은 서정적인 그런 인문학적인, 굉장히 불필요하고 비경제적인 감정에 의해 잘해준다는걸 인식하면 갑자기 악마가 되는 것 같아. 기독교인들이 자주 쓰는 말로 마귀가 씌이는 것 같아. 

 

그리고 왠지 그런거 있잖아. 연민을 느낄 정도면 얼마나 저 사람의 삶이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인걸까. 얼마나 여유로우면 그런걸까 하면서 어떻게든 그 사람의 여유를 나눠가질려고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그렇기에 괜한 연민을 보이는건 내 치부를 보여서 나를 빨리 죽여버리세요 하고 살인자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거였어.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버는거잖아. 돈을 번다는 것은 내가 가난해서 돈을 버는거잖아. 근데 무슨 여유가 있어. 뭐가 여유가 있어서 타인을 돕고 난리인거야. 

 

일을 한다는 것자체가 내가 가난해서이고 내가 불쌍해서 앞으로 먹고 살려고 그런건데 뭐가 여유가 있다는건지.. 그거는 착각인거야. 

당장 그 회사를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없는데 뭐가 누굴 돕고 말고를 해. 그거 자체가 배부른 생각이었던거야. 

 

 

예를 들어서, 내가 하루종일 편두통에 시달리면서까지 일을 하는데, 그런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전혀없고, 오히려 자기들하고 커피 안마셔준다고 왜 내가 사람들을 왕따시키냐는 그런 소리까지 듣는거야. 일이 너무 많아가지고 힘들게 헉헉대며 일을 하는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냐는거지. 그런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는거야. 나자신도 말이야. 그럼 그냥 우리 엄마처럼, 결국엔 우리 엄마를 죽도록 패고, 어깨가 골절될 때까지 패며, 산부인과 갈 돈도 없어서 방안에서 자식을 낳게 하는 아버지를 만나는 거하고 뭐가 다르냔 말이야. 

 

그런 사람한테 또, 엄청 초급을 뽑아놓고서는, 사는 지역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좀 가르치라고까지 하는 거야. 나는 일이 많아 죽겠는데, 가르칠 시간이 뭐가 있냐는거야. 그게 가르칠 시간이 있어보였나봐. 내가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말이야. 

 

그리고 밥을 사주고 그래도 내가 더 나이가 많아서 그냥 하는 소리도 굉장히 기분나빠하면서 무턱대고 화를 내는 후배도 이해가 안되는거야. 아무 뜻도 없고 농담인데도 왜 그런 소리 하냐고 먼저 묻지도 않고 그냥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안되더라고. 마음이 완전 꼬인 사람도 있는거야. 그러니까 왕따를 당했겠지. 그동안 잘지낸건 생각도 안하고, 잘해준것도 생각도 안한채로 한마디만 듣고서 무턱대고 화를 내는데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 

 

근데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있는거야. 왠지..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와서 말을 걸기도 하고 말이야. 아니면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 줄알고 먼저 다가가는 것도 큰 문제였던 거야. 정말 좋은 사람을 선별하는 눈이 없는거였어. 그래서 내가 사람을 안사귀는거고 말이야. 

 

웃으면서 나한테 말을 건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니야. 

근데 왜 나는 그걸 자꾸 오해하고 착각했던 걸까. 아무래도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탔었나봐. 외로운데 더 외로운 상태가 되게끔 그런 인간관계를 자꾸 맺는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관계말이야. 

커리어를 쌓아도 물경력이라고 모욕을 들어가면서 말이야. 아무리 헉헉대고 일을 해도, 그게 일이 아닌거야. 논거지. 

이런 바보 같은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어떻게 살아야겠어. 나는 그래서 최근에 매일 자살하고 싶단 생각에 빠져있었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무도 나같은 사람을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인정해주지도 않아. 

나조차도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래. 

이렇게나 부정적인 상태에서 뭘 할 수가 있겠어. 어떤 사람을 사귀겠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먼저 나한테 커피를 사준다고 해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었어. 그냥 그 사람이 궁금했고, 자기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궁금해서 사준거지 별다른게 없는거야. 나한테 도움을 주려고 사준 것도 아니고 나랑 긴밀하게 잘 사귀어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야. 내가 쓰레긴지 아닌지 판별하려고 먼저 선의를 베푼 거잖아. 거기에 혹하면 내가 진짜 지적 장애인인거지. 

 

왜 나는 이렇게 못나고 가난하게 태어나서 하루하루 힘들게 치여사는건지 모르겠어. 하루하루 왠종일 치여사는건 아니겠지만, 왠지 모르게 더 치여사는 것 같단말이지. 너무 너무 죽고 싶어. 근데 내가 한편으로는, 괜히 타인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거야. 그냥 대충 사는 것도 좋은데 말이야.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맞춰줘도 지랄하고, 안맞춰줘도 지랄하면, 안맞춰주는게 맞는거 아닌가? 어차피 지랄할건데 말이야. 

 

정말 어떤 사람은, 자기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거야. 근데 내가 그 사람을 늪에서 구해주려면 그 늪에 있는 진흙을 내가 다 뒤집어 써야해. 근데 그 사람은 워낙 그 늪에서 허우적대다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단 생각을 안하고 그냥 살려고만 발버둥치는거지. 고마운줄도 모르고 말이야.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건 당연하지만, 왠지 그로 인해서 나는 또다른 늪에 빠지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도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고통에 대해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공감할 필요도 없으며, 그 사람도 내 고통에 공감할 필요가 없다는걸 인정하고 인지하고 있어야하는거야. 항상 선을 지키고 있어야했다. 태양과 지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잖아. 멀리 있으니까 공존할 수 있는거야. 멀리 있으니까 태양 빛이 따뜻한거지. 가까이 붙어있더라도 따뜻한 수준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냥 서로의 본심이나 왠갖 고통들에 대해서는 좀 숨기는게 맞는거였어. 내 사람이 될 사람한테도 본심도 숨기고,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숨겨야했고, 솔직하다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뭔가 힘든게 없을까 하고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힘든 점을 조사해서 해결해주려고 하는거지, 본인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상대방은 애초에 자신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뭘 해결해줄 의지도 없었다는거야. 

 

어울리는 사람이 누군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 

그건 결국에는, 이것 같아. 내가 편한 사람은 곧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나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어서 편하다는 거잖아. 근데 내가 이해가 안되는 사람과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힘들고, 대화하는 것도 힘들잖아. 그러니까 내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나하고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같이 붙어있는거야. 생각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해서 말이야. 욕망이나 본능도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어울리는거야. 그 원리를 이해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도 요즘에는 어떤 사람을 보면 주변 사람도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아. 누구와 어울리는지도 참 중요하더라고. 나는 그래서 공부를 하는거야. 

 

누군가를 도와주는거. 불쌍하다고 도와주는거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를 도와줄려면 절대로 보상을 받을 생각으로 도와주면 안돼. 그거는 거래이지 도와주는게 아니잖아. 내가 베풀 수 있는 한도내에서의 친절은 끊임없이 베풀되, 다만 내 일상도 망가뜨릴정도의 부담스런 친절까지는 굳이 베푸는게 아니었어. 근데 나는 어릴 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 같고 그게 결국 나를 옭죄고 망치곤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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